잠입자 (Stalker, 1979)
163 분 / 러시아 _ B&W / color _ 35mm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출연
알렉산드르 카이다노프스키, 아리사 프레인드리크, 아나토리 소로니친, 니콜라이 그린코
서울아트시네마러시아 모스필름 회고전 (3.31~4.26)
memo
주점의 실내로 시작하는 실내는 이후, 세 사람이 모이고 또 흩어져 떠나가는 장소다.
카메라의 구석에서 pop out하는 듯이 등장하는 사람, frame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fade, "The Zone"에 관한 설명.
빛과 이동에 있어 특이한 점진성을 보인다.
peeping하는 시점으로 조용히 침실로 이동해 들어간다. 스무스하고 소리없이 움직이는 듯한 카메라는 분명 '움직(동적)'이지만 더할나위 없이 정적인 느낌을 준다. 그건 대상이 정적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뿐만 아니라 카메라 자체에 그런 속성이 부여된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굉장히 회화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잠자는 세 사람의 얼굴을 잡는 씬.
- 카메라의 이동 방향이나 앵글이 흥미로움.
그가 방에서 나올 때까지의 시퀀스.
등 뒤로 카메라가 들어왔던 문을 닫지만 틈이 나와있고, 그 사이로 여자는 깨어난다.
울부짖음. 슬픔이나 분노를 넘어선 고통. 온몸을 쥐어짜야지 나올 수 있는 종류의 모션. 감정이 아니라 오장육부를 휘말아 감는 듯한 꼬임, 그리고 일그러뜨림.
+
잠입자, 그가 '잠입'해 들어간 세계, The Zone은 대체 어떤 곳인가.
현실의 연장선상에 있는 기묘하게 틀어진 차원일까. 현실의 반영인 꿈 같은 곳일까.
- 그가 집에서 나올 채비를 하는 도중 잠에선 깬 부인이 불을 켰을 때, 전구의 점멸이 구역의 문턱 앞에서도 반복된다.
물과 습지가 지배적인 영화다. 이렇게 다양한 자연환경(폭포, 화산지대, 사구, 동굴-혹은 터널, 늪지...)을 담아내면서 이토록 인공적인 느낌이 들기도 어렵다.
늪지의 몽환적인 꿈, 아니, 혹은 현실, 혹은 과거는 잠입자만의 것이었을까?
컬러와 흑백-세피아톤이 교차되어 가면서- 현실과 구역은 자꾸만 뒤섞인다.
엔딩의 기차소리는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소환의 소리 같다.
날아들어오는 꽃가루는 하염없이 쌓여만 간다.
비슷한 듯 했지만 교수와 잠입자는 결국 '다른' 사람이었다. 작가와 교수, 작가와 잠입자도 마찬가지이다. 무언가를 갖고 있지만 놓아버린, 혹은 가졌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아무것도 갖지 못 함을 안 사람. 이성과 과학의 가능성에 기대 미래를 예측하고 결론을 내리는 사람, 하지만 확신은 없다. 어찌 보면 꿈을 좇아 사는 철없는 사람, 세계가 절망으로 치닫고 있는지 몰라,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간다.
어떤 방식이 옳은지는 모른다. 아니, 삶의 방식을 놓고 옳다 그르다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더 깊은 논쟁을 필요로 한다. - 대체 삶의 목표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시간의 궤적 자체로 보아야 하는가?
교수는, 그리고 작가는 어떤 식으로 살아갈지 모르겠다.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 세상에서 혹은 자기 안에서 희망을 찾거나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잠입자는, 그는 또다시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구역으로 갈 것만 같다.
그게 사람이니까.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한 번 보는 걸로 이해하려 든다는 건 오만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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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7급 공무원 보고싶엉! 강지환 하아아아학
난 그 영화 보고나면 왠지 돈 아까울 것 같아서 안 끌리던데...=ㅅ=;;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