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점 (2008)- 유하 감독
- 주진모 (고려 왕), 조인성 (홍림), 송지효 (왕비), 심지호 (부총관 승기), 임주환 (한백), 여욱환 (임보), 송중기 (노탁), 장지원 (보덕)...
- 의상 (정정은, 이혜순 ...)
(영화 내용 언급합니다. 스포일러 원치 않는 분은 읽지 마세요.)
요즘 사람들을 만나서 영화 얘기를 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영화가 바로 <쌍화점>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영화인 것이다. 이미 누적으로 250만을 돌파했고, 이번주 안으로 300만 관객을 넘을 것이란 예측도 어렵지 않게 나오고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
유하 감독의 이름이 보장하는 스토리성 때문에 지갑을 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리고 주로 여성 관객은) 조인성이란 스타의 출연으로 영화관으로 향할 것이다. 유하 감독이야 어쩔지 모르지만 마케팅하는 쪽에서는 조인성의 티켓파워를 활용하는 것이 제일전략이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티켓파워, 관객수, 흥행 과 별개로 영화의 완성도만 놓고 봤을 때 과연 조인성이란 배우가 얼마만큼 기여를 했는가-를 생각하면 시원스레 답하기가 어렵다.
나는 조인성이 나온 그 드라마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적도 없고, 툭하면 울고 소리 지르는 연기가 반복되는 거 같아 지겹기도 했다. 그런 그를 '배우'라 부를 수 있겠구나, 싶었던 건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에 나온 걸 본 이후였다.
쌍화점은 크랭크인할 때부터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지라 조인성의 캐스팅에 대해서는 의심 반 정도 섞인 채로 갸우뚱-했다. 내용을 얼추 듣고는 흐음- 했고, 예고편이 공개된 이후에는 더욱 더 흐으음- 하게 됐다.
비록 <비열한 거리>로 배우로서의 기반을 조금 다지게 되었고, 영화제에서 상도 받았지만 여전히 그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확신할 수 없었고 더욱이 사극이라는 점이 불안하기만 했다. 그래도 난 그나마 주진모, 송지효와 함께 연기할 때 조인성이 크게 처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완전히 내 예상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이전까지 주진모와 송지효의 연기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 둘의 연기가 일취월장한 건지, 두 사람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연기를 잘 했다. 그리고 조인성은 '아니나 다를까-'란 씁쓸한 기분으로 나오게 만들었다.
유하 감독이 무엇을 믿고 조인성에게 그 역할을 맡겼는지 이해가 잘 안 간다. 물론 비쥬얼적인 측면에서 조인성만한 배우가 흔한 건 아니다. 그리고 그런 20대 말미의 불안한 눈빛도 흔하진 않다.
하지만 조인성은 사극에 들어간 순간 여지없이 흔들려버리고 말았다. 극장에서 빵빵한 사운드로 들으면 확 튀는 목소리, 불분명한 대사 처리는 가슴을 저미게 할 정도였다. - 내가 배우들이 대사 웅얼거리면서 입 안에서 씹어먹는 것에 예민한 편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뭘' 말하는지는 감정표현과는 별개로 정확히 전달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조인성이란 배우가 유하 감독이 그려낸 홍림이라는 인물의 혼란과 불명확한 감정들을 다 이해하고 표현하기엔 아직 경험할 것이 더 많은 사람이라 이런 아쉬움들이 크게 그려지는지도 모른다.
왕과 왕비, 홍림 세 사람 중에서 가장 파악하기 힘든 인물이 홍림이라는 점에서도 조인성의 연기력을 질타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일 수도 있다. -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홍림이라는 인물은 궁 안에서 왕(=남자)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존재다. 자라는 환경이 다른 만큼 당연하다 여기는 것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왕인 남자를 모시고 그와 성관계를 맺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왕비(=여자)를 안게 되면서 본능적인 성욕에 눈을 뜨게 된다.
홍림이 왕비를 '연모'한다 말하는 것에는 갸우뚱할 수 밖에 없었다. 저게 연모라고? 내가 보기엔 저건 막 눈뜬 성욕에 미친 거로밖에 안 보이는데. 거기에 조금 더해진 동정 같은 것. 왕비는 새로이 펼쳐진 세상으로의 하나의 창구와도 같다. 처음 만난 여성에 대한 성욕과 동정, 집착, 소유욕같은 것들이 합쳐져서 그걸 연모라고 느끼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 마치 알에서 깬 새끼가 처음 본 대상을 엄마라고 하며 졸졸 쫓아다니는 것처럼.
그런 불안함과 혼돈, 자기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으로 휘몰아치게 되는 과정을 그리는 데 있어선 떨리는 눈빛의 조인성이 적합하다. 하지만 대비의 효과를 주기 위해서 홍림이란 인물은 왕비를 안기 전에는 지극히 안정적인 모습이어야 하는데, 초반 등장할 때부터 홍림은 붕- 떠있는 존재와 같았다. - 특히 승기에게 칼을 겨누며 대사를 던질 때에는 저게 부끄러워서 떨리는 건지, 화가 나서 떨리는 건지 파악할 수 없었다.
송지효는 드라마 사극을 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왕후의 무게있고 낮은 목소리 톤을 훌륭하게 잡아냈다. 그리고 여배우로서 쉽지 않은 결정을 한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홍림과의 두번째 베드신에서 닫혀있던 물이 터져나온 듯, 왕비가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감각에 눈을 뜬 듯 눈빛이 변하는 순간에는 숨을 들이킬 정도였다. - 영화 전체에서 송지효의 연기가 가장 빛났던 순간을 잡아내라면 난 그 씬을 꼽겠다.
그런 왕후도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갈피를 못 잡으면서 보고 있는 관객들조차 헷갈리게 만들었다. - 난 이건 연기도 연기지만 각본이나 연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궁중 암투라는 상황과 인물들과의 관계 속의 감정이 섞여들면서 이도 저도 아니게 맹탕이 되었다.
왕으로서의 주진모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세 명 중에서 가장 일관된 감정톤을 갖고 갔기에 가능했던 걸지도 모르지만 애정, 온후함, 자상한 배려 같은 것들이 의심과 소유욕, 집착과 섞여들면서 휘몰아치는 긴장이 영화 전체의 긴장을 자아냈다. - 이걸 홍림을 맡은 조인성이 함께 만들어나가면서 시너지 효과를 주었어야 했는데 그게 충분치 않았다.
왕의 감정은 남성적이라기 보단 여성적인 정서로 이해할 수 있다. 의심되는 부분, 심증이 분명 있는데 '아닐 거야, 아닐 거야, 너 아니지? 끝까지 아니라고 우겨, 잡아떼, 이제부터 잘 해, 믿을게, 아닐 거라 생각해' 하며 몰아치는 쪽과 '설마, 설마, 그런 거야? 니가? 정말?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얘기하고 잘못했다고 해, 어서-' 라며 몰아치는 쪽의 서로 상반된 감정이 왕의 내부에서 팽팽하게 대립한다. 저런 모순된 감정은 연인의 변심을 의심하는 여성이라면 한 번쯤 겪어볼 만한 감정이다. 그래도 끝까지 내 옆에 있어- 라고 붙잡고 늘어지는 것도. 여러 모로 영화에서 보여지는 왕의 감정, 행동은 여성적인 정서를 밑바탕으로 깔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 이런 걸 캐치하고 표현해낸 감독도 참 대단하다. 난 유하 감독은 굉장히 남성적인 정서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결말이 아니었다면 난 유하 감독님에게 큰 실망을 느꼈을 거다. 비로소 알게 된 진실에 마지막으로 왕을 눈에 담고 죽는다는 그 결말이야말로 삐걱거리던 영화를 그나마 안정시키며 가라앉힌다. 목숨의 끝=사랑의 끝에서야 비로소 지나간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 뭐든지 끝=결말 이 나야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이 죽기 전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어떠했다 다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도 끝나기 전에는 그 사랑이 어떠했다 말할 수 없다.
- 영화에 대해 만족할 만한 부분도 아쉬워 할 만한 부분도 많았던 만큼 주절거릴 만한 내용도 많고 여러 모로 생각할 점들도 많이 던져주었다. 화려한 의상이나 세트 같은 것들은 눈에게 보는 즐거움을 안겨주었다.(사극을 하면 제작비가 뛰는 걸 알았다니까...)
- 내가 보기엔 이 영화는 왕의 비극이자 사랑의 완성이다.
- 될 성 부른 떡잎을 골라서 온갖 정성 다 들여가며 키워놓으니까 채가는 거 보면 나 같아도 미치겄다.
소소한 아쉬운 점
- 클로즈업에 강한 조인성의 얼굴을 롱테이크로 잡는 씬이 두어개만 더 있었어도 좋았을 텐데 싶다. 왕후를 돌려보내고 조용히 가라앉은 조인성의 얼굴과 떨리는 눈빛이 5초만 더 됐어도 좋았을 텐데, 더 넘쳐 다가오기 전에 뚝 잘린 듯한 기분을 영화 보면서 세네번씩 느꼈다.
- 홍림이 왕이 그린 그림을 반으로 잘라내버리는 게 없었던 점. (난 분명히 저거 자를 거야, 반으로 가를 거야, 하면서 뻔하긴 하지만 통속적인 만큼 효과적인 클리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안 나오더라.) - 그게 있었으면 맨 마지막의 둘의 말 달리는 씬의 부가 효과가 컸을 텐데. 감독님도 한 번쯤 고민하지 않았을까.
궁금한 점
- 왕이 그린 그림에서, 홍림이 화살을 겨누고 있는 방향이 왕이랑 똑같은 방향으로 사냥감이 아니라 왕을 향한 것 같다고 생각한 건 나 뿐이었을까?
*** 임주환 씨가 한백 역으로 나온 걸 보고 나는 좋아 죽는 줄 알았다. 요즘 참 눈이 많이 가는 배우다. 여기저기서 조연으로도
자주 보이고. 그 전에 했던 드라마나 영화는 소소한 하이틴 로맨스 종류가 많았고 비중도 그다지 크지 않아서 눈여겨 보지
않았는데. 종합병원2나 옥션하우스의 에피소드별 조연으로 나오는 걸 보니까 마스크도 괜찮고 연기도 좋더라.
곧 있으면 드라마 <탐나는도다>의 주연으로 TV에서 볼 수 있으니, 기대만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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