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달린다(2009)
from Cine 2009/07/05 00:17
거북이 달린다 (2009)
    범죄, 코미디, 액션, 드라마 | 한국 | 117 분 | 개봉 2009.06.11
감독    이연우
출연    김윤석(형사, 조필성), 정경호(탈옥수, 송기태), 견미리(조 형사 아내), 선우선(기태의 내연녀, 경주), 김지나(옥순), 신정근(용배), 최권(표재석), 김혜지(주랑), 주진모(양 반장), 이무생(이 형사), 유하복(김 형사), 임형택(박 형사), 김희원(관장)


문득 영화가 배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배를 설계하고, 그 배가 잔잔한 파도 위를 표류하게 하거나, 혹은 거친 바다를 헤쳐나가게 하거나 하는 것이 감독의 몫이라면 그 배를 직접 만들고 파도, 바람, 해류의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스태프다. 그리고 그 배 위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배우와 같다.
배가 어딘가 육지에 상륙할 수도 있지만 꼭 특정한 목적지에 가 닿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열린 바다의 지평선 너머 어딘가를 향해 계속 떠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배가 침몰해버리진 말아야 하지 않을까, 가 지금의 내 생각이다. 침몰해버린 배는 더이상 항해를 할 수가 없다. 파격적인 비극으로 끝나는 영화더라도 그 영화 자체는 오롯이 존재해야 하는 창작물이고, 그 항해는 어떤 일지를 쓰던간에 기록되어야 한다. 하지만 배 자체가 침몰해버린 영화는 주제 의식도, 남기는 메시지도 없다. 다른 배를 만들고 움직일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정도라면 모를까.

정말 좋은 배를 만들어냈는데, 항해가 엉망진창이라면 배우의 문제일 수도 있고. 정말 표류하다 망가져버릴 것 같은 배를 어찌어찌 끌고 지평선까지 나아가는 배우도 있다.

망가지기 십상이었던 배의 선두에 서서 이 영화를 이끌어나간 건 다름 아닌 김윤석이란 배우였다. 포스터에는 마치 <추격자>같은 느낌을 주는 김윤석과 정경호의 투샷이 찍혀있지만, 이 영화는 절대 투탑이 아니다. 원탑으로서의 김윤석이 뱃머리에 우뚝 서있는 영화다.

굳이 없어도 될 법한 씬들이 몇몇 보여서 (송기태와 경주의 스쿠터 타는 씬은 없는 편이 나았다고 생각하는데-) 영화가 전체적으로 산만해진 경향도 있었지만, 감독은 나름대로 그게 또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넣었겠지. 결국 이건 개인적인 취향이다.

어쨌든, 여기저기로 잔가지를 치려고 드는 영화의 굵은 줄기를 잡아 나가는 이 김윤석이란 배우의 존재감에는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는 든든한 조연들 역시 대단하다. - 용배 역의 신정근씨나, 양 반장 역의 주진모씨는 특히.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의 이야기를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그려나가려 한 노력은 보이지만, 그럴 바엔 차라리 김윤석의 캐릭터를 좀 더 복합적으로 그려내는 편이 나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어중간하게 조명된 송기태와 경주의 이야기는 그다지 매혹적이지 못 했고, 전설적인 싸움꾼으로서의 송기태란 캐릭터는 현실적으로 납득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 그런 캐릭터이기에 표재석이 형님 형님 하며 따르게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스토리가 이어나갈 수 있게 하는 설정이었겠지만.

그리고 하나 더. 아무리 생각해봐도 포스터는 영 아니다. 김윤석과 정경호의 투톱같은 느낌을 주는 포스터는 여러모로 <추격자>같은 느낌을 주고, 실제로 같은 영화관에서 별 정보 없이 영화를 택한 사람들은 끝나고 나가면서 '어, 추격자 같은 게 아니네'라고 말하더라. 마케팅의 한 가지 방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좀 더 코믹스러운 느낌을 주는 포스터가 낫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최동훈 감독과 김윤석의 다음 영화 <전우치>를 빨리 극장에서 만나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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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5 00:17 2009/07/05 00:17
킹콩을 들다(2009)
from Cine 2009/07/04 03:16
킹콩을 들다 (2009)
    드라마 | 한국 | 120 분 | 개봉 2009.07.01
감독    박건용
출연    이범수(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출신 역도 코치 이지봉) 조안(박영자), 이윤회(송민희), 최문경(서여순), 전보미(빵순이, 이현정), 김민영(이보영), 이슬비(이수옥), 박준금(교장 선생님), 우현(교감 선생님), 김산(심상환)



장편상업영화 입봉 영화, 스포츠 영화, 부상으로 은퇴해버린 메달리스트가 시골 학교의 선생님이 되어 학생들과 그려나가는 이야기. 이 세가지 정보만으로도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 지가 머리 속에 얼추 그려졌다. 그리고 영화는 그렇게 그려진 수순을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 근래 본 그 어떤 영화보다 이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고 나왔다. - 5월 전주에서 <하바나 블루스>를 본 이후로 그렇게 줄줄 운 것도 오랜만이었다.

연출도, 스토리 전개도 익숙하다 못 해 식상할 지경이었다. 시퀀스가 어떻게 이어질지도 첫 씬을 보면 생각할 수 있었고 그대로 그려졌다. 전형적인 캐릭터는 어디선가 수도 없이 봤을 법한 인물들이었다.
이지봉이 학생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을 그린 것도 무언가 생략됐거나 건너뛴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뭐야, 너 하기 싫다고 한 거 아니었나- 좀 어설프고 이상한데? 싶은 부분이 바로 초반의 전개. 그렇지만 그것이 그리 어색하지도 않았다. 이건 아마 이범수라는 배우가 갖는 천의 얼굴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범수만큼 다양한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도 흔치 않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분명 오목조목 잘 생겼는데도 웃는 순간 느끼하다거나 그런 것 없이 굉장히 순박하게 편안한 느낌을 준다.

너무나도 전통적인 서사를 따라가는 이 영화에, 그럼에도 이상하게 눈물샘이 터져버린 건, 아이들에게 공감해버렸기 때문이다. 비인기종목에 대한 설움도 설움이지만, 그보단 한창 피어나야 할 저 아이들에게 필요한 작은 관심과 따뜻한 마음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느꼈다. - 이지봉에게 컴플렉스를 가진 심상환이 너무 일면적으로 그려졌다는 비판을 피할 순 없겠지만 제한된 러닝타임 안에 우겨넣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닳고 닳은 영화에 에너지를 부여하는 건 다름 아닌 배우다. 조안을 비롯한 6명의 여배우들. 나머지 5명은 조연이라고 나오지만, 난 그들도 모두 주연이라고 생각한다. 각각이 독특한 개성을 갖는 하나의 살아있는 인물이 되어 영화의 각 부분에서 탄산처럼 터져주는 모습이 너무나도 예뻤다. - 그러고 보니, 이런 캐릭터를 구축한 감독에게도 점수를 주어야겠다.
쉽지 않은 연기를 해낸 이 배우들이 앞으로 또 어떤 인물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 특히 최문경과 전보미, 이 두 사람은 더더욱.


<트랜스포머>가 극장 개봉관의 절반을 먹어버린 상태이다.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돌아가는 배급이니 돈 벌기 위한 극장의 상영관 먹기가 야속하긴 해도 뭐라 할 순 없다. 그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것이 결국 관객이니. 지금 개봉하는 한국 영화가 적은 것도 <트랜스포머>와 맞붙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조용히 올라와있는 <킹콩을 들다>가 - 영화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 왠지 뿌듯하고 기특하다. 손익분기점 넘을 만큼은 관객이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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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4 03:16 2009/07/04 03:16
정상, 다수의 문제?
from 분류없음 2009/06/13 00:15
“그런데 사회적 차별을 예방하는 일이 도리어 그 차별에 명분을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이를 의학 본연의 구실로 볼 수 있을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6월호


출생 전 진단으로 태아의 잠재적 질병을 예방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아이디어 같았다. 이 아이디어는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이 질병 유전자를 하나 둘씩 찾아냄에 힘입었다.
질병 유전자를 갖는다고 해서 100% 발병하는 것은 아니다. 발병에는 분명 환경적인 요인이 무시 못 할 영향을 미친다. 그렇지만 진단으로 태아가 20세, 혹은 30세 이후에 특정 질병이 발병할 확률이 90% 이상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그 때도 환경적 요인을 계속 거론할 순 없다.

출생 전 진단은 여러 나라에서 자리 잡는 데 여러가지 갈등과 부딪친다. 합법화된 나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다. 합법화 되었다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 대해 허용될 것이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여러가지 논쟁점이 여전히 존재한다.

6월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지에 실린 기사에는 왜소증에 대한 케이스를 다루고 있다. 출생 전 진단 사항에는 왜소증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소증은 실제로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어떤 질병은 아니다. 하지만 왜소증이 신체적, 심리적 소외감을 주기 때문에 진단 사항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위의 질문을 던진다. 왜소증을 진단하는 것은 사회적 차별을 예방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를 제거한다는 것은 사회에서 왜소증을 가진 사람들이 차별받고 있음을 인식, 수용하고, 이 차별에 굴복함으로써 이미 존재하는 사회적 차별을 오히려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기자는 뒤이어 중국이나 인도 같은 나라에서는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 역시 사회적 차별의 잠재성을 안고 태어난다고 말한다. -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남아선호사상이 우세했던 것이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출생 전 진단으로 남녀감별을 할 때 사회적 차별을 예방하기 위해 여아를 낳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사회적 차별의 장벽을 굳건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셈이다.

해묵은 질문이 여기쯤에서 다시 떠올랐다.
과연 '정상'이란 무엇인가. '정상적인'이라고 하는 게 과연 어떤 상태를 지칭하는 것인가.
성인 남성의 키 평균이 175cm 가량이라고 하자. 그러면 키가 150cm인 성인 남자는 '비정상'인가.
Normal하다고 하는 것은 어떤 규격의 범위(range)에서 벗어나지 않은 걸 가리킨다. 그리고 흔히 규격의 범위는 평균을 중심으로 정해진다. 그렇다면 정상=평균 인가?
남들과 다르면 비정상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이 때 남들은 '다수'이다. 다른 이는 '소수'이다. 소수가 다수가 되는 경우, 비정상은 정상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이동을 하는 것인가?

가타카의 세상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부적격자(invalid) 빈센트가 완벽한 우성인자 조합의 제롬이 되게 하는 세상. 아니, 적어도 그런 세상을 끌어당길 만한 밧줄 올가미는 점점 길어지고 있다. 이 올가미를 던지는 방향은 철학/윤리 담론이 제시해주어야 한다.
계속해서 뒷걸음질치고 있는 현재 - 그것도 스스로 두려워서 뒷걸음질치는 것이 아니라 밀리고 밀리면서 뒷걸음질'쳐지'고 있는 - 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부재를 절실히 느낀다.


ps. 최근 개봉한 <3XFTM>. :: 정상-비정상의 경계는 중력처럼 실존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사회적/문화적 틀 안에서 형성되는 어떤 불균일층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일상적인 삶 속에서는 중력보다 훨씬 더 자주 맞닥뜨린다. - 문제는 이걸 인지조차 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니, 인지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일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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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3 00:15 2009/06/13 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