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기분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요즘 늘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오늘은 특히 기복이 더 심했다. 집에 돌아와 습기에 흠뻑 젖은 바지를 겨우겨우 벗겨내고 따뜻한 물 속에서 한참을 노곤하게 서있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게 다 내 옹졸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원인을 알게 되고 난 이후에도 기분은 여전히 참담하기 그지 없다. 뱃속에 커다란 블랙홀이 있는데 그 주변에서 우주폭풍이 몰아치면서 모든 내장을 다 빨아들이고 있는 듯 하다.

내 눈에 다른 사람들의 단점이 보일 때면, 그게 나 자신에게 (과거에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단점이기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랬다. (by 위대한 우리 어마마마)
오늘도 날 기분 나쁘게 만든 사람의 단점이 유독 도드라진 건, 그게 오늘 내가 사람들 앞에서 표출한 단점이기 때문이었다.

실없는 얘기들을 흘려대는 건 그저 웃음을 위함이었지만, 어느샌가 나쁜 습관으로 따라붙어버렸다. 떼어내고 싶은데 손가락 끝에 붙어있는 얇은 종이그림자마냥 잘 떨어지질 않는다.

이야기를 털어내고 싶은데,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원인인지도 모른 채 이상한 기분들만 자꾸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요 며칠 내내 피곤해보인다는 말을 들으며 출근했다. 정말이지, 아침부터 피곤했다. 일어나기도 싫었고, 씻고 나가기도 싫었고, 버스-지하철-버스의 삼중고를 견뎌가며 부대끼며 가고 싶지도 않았다. 사람들과 아침 인사 나누는 것마저 힘에 부치다고 느낄 정도로 입이 무겁고 다리는 더 무거웠다. 지하철 역에서 나올 때쯤부터 하루 분의 에너지의 반을 이미 써버린 듯한 그런 나날.

자연스레 입이 열린 날은 그만큼 실수할 만한 말들이 더 잘 쏟아져나온다. 피로가 쌓여 명료한 의식으로 컨트롤이 안 될 때는 더욱더 그렇다.
피곤하기도 하거니와 사람들 만나면 실수할까봐 보고픈 사람들이 많은데도 연락 안 하고 조용히 집에 돌아온다.
하지만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은 어쩔 수가 없다. 나는 그래서 또 말을 하고, 또 실수를 하고, 또 밤이면 죄책감 같은 자괴감에 시달린다. - 사람들이 철없는 막내의 웃긴 소리니 하고 잊어줬으면 좋겠지만, 그건 또 모르는 거지. 아니, 그리고 설사 기억하지 못 한다 해도 내 속에 그 잔재가 남아있다.


입을. 열지 말고, 당분간 살아야겠다.
주말에 출근하지 않으니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정상적인 삶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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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0 00:29 2009/07/10 00:29
반반반
from 분류없음 2009/07/06 20:05
올해도 반이나 갔다. 올해 반이나 남았다.

2주일에 한번씩 돌아오는 데이터 발표는 은근 스트레스다. 그런데 언니들 오빠들 다 똑같은 2주일이란 기간 동안 나보다 훨씬 퀄리티도 좋고 양도 많은 데이터를 내놓는 걸 보면 내가 효율적으로 실험을 못 하는 거다. 아, 이런 젠장.

그래서.
- sequencing 결과 확인 대조(47)
- construct(promoter, tag exchange)
- categorize domains (47+86)
- jurkat papers
- JNK pathsay stimulation cue


일하자. 일. 공부가 일인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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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6 20:05 2009/07/06 20:05
걸어도 걸어도 (Still Walking, 2008) 
    가족, 드라마 | 일본 | 114 분 | 개봉 2009.06.18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유, 아베 히로시, 하라다 요시오, 하야시 료가, 카토 하루코, 키키 키린, 나츠카와 유이...



한가족이면서도 밤에 따로 떨어져 분리되어 숨쉬는 상대를 의식하게 되는 그런 침묵이 존재한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난다. 아마도 존 어빙의 <가아프가 본 세상>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이런 순간의 감각을 이토록 적절하게 표현하는 문장을 본 적이 없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언어로 설명할 수 없었던 종류의, 하지만 알고는 있는 감각이다.

그런 종류의 침묵이 영화 안에 감돈다. 특히 어떤 종류의 균열을 안고 있는 이 가족의 경우엔 더더욱. 균열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은 사람의 빈 자리에서부터 일어난다. 그리고 그 균열이 마치 블랙홀이라도 되는 듯 사람들의 감정이 몸에서 새어나가 공기 중으로 빨려나간다. 하지만 모든 감정이 균열의 틈새로 다 빨려들어가진 못 한다. 완벽한 블랙홀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어딘가 비틀어진 잔재는 꾸물거리는 덩어리마냥 나와 남과 공간에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가족만큼 제 일의 애증의 대상이 되기 쉬운 존재도 없을 것이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멀고, 한 배에 타고 있으면서도 가끔은 이 배 자체를 뒤집어 엎어서라도 보고 싶지 않다는 충동에 시달리다가도 외풍이 불어닥치고 높은 파도가 치면 또 어떻게든 배가 떠 갈 수 있도록 함께 움직이는 존재. - 아, 이것도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말인데 어느 것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마지막 씬이 덧붙여진 느낌이라 나는 엔딩이 참 ... 찜찜했다. 이미 한 번 휘어진 것을 어떻게든 다시 펴려고 하는 노력같이 느껴졌다. 계단을 걸어올라가는 두 사람의 발을 잡은 영상이 참 좋았는데, 그 뒤에 이어진 나레이션과 새로운 가족의 모습이 부가적인, 이미 컵 밖으로 넘쳐버린 물 같았다. 혹은 남겨진 사람들의 미화된 기억 같아서 그들이, 그리고 그가 꽤나 파렴치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 하기사 실상 남은 사람들의 기억은 어딘가 실재와 달리 왜곡되고 미화되고 풍화되고 만다. 계속해서 외피를 덧입어 추억으로 자리잡는다. 그런데 그런 잘못된 기억은 그 뿐만 아니라 그 부모들에게도 있었다. '아무렴 뭐 어떻냐'라는 말로 슥 지나갈 법한 정도의 사소한 기억. 정말 사람은 원하는 대로 기억하는 것일까. (그것을 '기억'이라 부를 수 있는가.)

걸어도 걸어도 닿지 못 하고, 하지만 그래도 걸어가야 하는 곳이 있다. 불합리하다고 느끼지만 또 그런 게 삶이라고 스스로에게 초라한 위안의 말을 건네본다.

-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지막 씬이 있고 없고에 따라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확 바뀐다. 그런데 나는 그 엔딩씬이, 그의 기억이 그 자신에게 하는 변명으로 느껴졌듯이, 영화 자체가 관객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하는 변명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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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5 00:39 2009/07/05 0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