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휴강했고, 잠시(?) 수다를 떨었다.
정리해서 랩으로 올라오는데 문을 딱 닫고 들어서자마자 우울해졌다.
원래부터 우울했는데 인식한 건지, 아니면 그 순간부터 우울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놀라울 정도로 기분이 다운되었다.
이 상태로라면 뭔가 말실수를 해도 크게 하고, 실험을 해도 뒤집어 엎어 망하겠단 예감이 들 정도로.


냉장고 물이 넘쳐흘렀길래 닦아내고 물을 덜어내 버렸다.
몸을 움직여봐도 딱히 기분이 나아지진 않았다.
- 아침에 시작한 실험이 있으니 이따 더 어두워지면 어쨌든 하긴 해야 하지만.

배가 고파서 그런가, 얼른 빵을 꺼내 먹었다.
배는 찼는데 여전하다.
혈당이 낮은 건가, 이럴 때를 위해 사둔 너무(!) 단 트러플을 꺼내 삼켰다.

빠른 비트의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앉아 생각해보았다.

무엇 때문일까.
아침까지만 해도, 아니, 수업을 들으러 갔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그렇다면 이유가 될 만한 건 한 시간 반 가량 동안 떠들어댄 그 수다 밖에 없는데, 딱히 우울해지게 만들 만한 거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니 굳이 꼽자면 있을 수도 있지. - 공통점으로 묶였다 풀어지는 순간 순간의 집합 관계, 동의해줄 순 없지만 동질감을 느낄 순 없는 그룹, 나의 묘한 허영심 같은 것들.


신기한 것은 순식간에 기분이 급강하해버리는 그 순간의 기작이다. 평행선을 그리며 달리던 롤러코스터가 85도 각도로 떨어져내리는 모양이다.

어리광을 부릴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늘 그렇듯 해결책은 내 손 안에 뻔히 놓여져 있다는 것도 알고.
누가 그러더라. 내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거라고. - 나도 동의한다.

예전엔 이렇게 기분이 쑥 가라앉아버리면 그냥 잠적해버렸지. 학교도 안 나오고, 일도 다 내팽개치고, 연락도 안 받고.
이젠 그럴 수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어른이 되어가는 건 내 개인의 기분이 어떻든 간에 그걸 어찌저찌 끌고 나가면서 일을 해나가는 과정일 거다.
- 그리고 그런 최저, 최악의 기분 상태에서도 사람들에게 실수하지 않도록 다잡아야 하는 거겠지.


단 걸, 맛있는 걸 많이 먹고,
빠른 음악을 시끄럽게 듣고,
'도피의 쾌감과 기만의 인식 사이'의 소설을 읽고,
11시에 퇴근하는 생활.

매몰되지 않게 균형을 잡는 일은 늘 어려울 수 밖에 없다.
- 그나마 징징거리는 빈도는 준 것 같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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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9 18:33 2009/09/29 18:33
잠시 되돌아보아
from 분류없음 2009/09/15 00:48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핑계로 버려두었던 내 공간을 다시 되짚어본다.
사실 바쁜 것보다, 피곤하다는 것보다 어느샌가 풀어내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다.


가을 바람이 불고 거칠거칠한 마음을 조금 가라앉혀 본다.

앓느라고 앓느라고 무료한 오후 시간을 날려보내고 정신을 차리면 어느샌가 어둠이 깔려있다.
밤이 조금씩 길어지는 걸 몸으로 안다.



아무래도
괜찮다.
가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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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5 00:48 2009/09/15 00:48
달콤한 인생(2005)
느와르, 액션, 드라마 / 2005.04.01 / 120min / R
감독 김지운
출연 이병헌(선우), 김영철(강 사장), 신민아(희수), 김뢰하(문석), 이기영(오무성), 오달수(명구), 김해곤(태웅), 진구(민기), 정유미(미애),
+ 특별출연 황정민(백 사장), 문정혁(태구)


김지운 감독은 이병헌의 매력 포인트가 뭔지 안다. 그냥 '와, 매력있네'라고 말할 때의 그 느낌이 아니라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성같은 매력 말이다. 그 성마른 피부, 보지 않고 듣기만 할 때 오히려 더 살아나는 깊은 보이스, 그리고 눈. 두 개의 길게 늘어진 눈, 그 속의 까만 눈동자.

흑과 적이 수직으로 배치될 때 사람을 얼마나 감정적으로 끌어당기면서 동시에 밀어내는지. La Dolce Vita가 선명히 박힌 붉은색의 바와 검은 기둥이 프레임 속의 공간에서 또 하나의 프레임을 구축할 때 감정이 그 속으로 휘몰아쳐들어간다.
감정을 자극하는 붉은색의 온갖 채도에 따라 인력과 척력의 사이에 끼어 옴싹달싹하지 못 하면서도 시선을 돌리지 못 한다.

어둠 속에 갖가지 빛으로 명명하는 도시의 밤은 매혹적이고, 솔직하다.


빛을 이용할 줄 안다는 거다. 정중앙에서 내려찍은 샷 하며... 카메라 앵글을 적절하게 이용해서 스타일리쉬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살짝 엇나간 앵글, 달리는 차 안의 선우를 찍은 씬들. 그리고 살짝 기울어진 평면 위의 매달린 선우는 불안한 감정을 자아낸다.

이 영화는 버릴 게 없다.
'영화'라는 게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자본이 들어가는지, 그 처절한 상업성 속에서 어떤 '작품'이 태어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이건 도저히 이해할래야 이해될 수 있는 공정이 아니다.
촬영, 조명, 세트의 완벽한 삼박자가 맞아들어가고 여기에서 배우들의 연기가 펼쳐지고 감독의 연출과 편집이 마침표를 찍는다.

유치해지기 쉬운 대사도 이병헌의 목소리를 타고 나오면 애절한 울림을 갖는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 라고 선우가 물을 때, 그의 얼굴은 '처연한 아름다움'을 지닌다.
- 거기서 한 번 더 나아갈 때, 나는 심지어 아쉬움을 느꼈다. 그대로 있어줘-라고 말하지도 못 하지만, 조금씩 벼려가며 동시에 망가져가는 모습을 볼 때 느끼는 안타까움이 혼재한 상태로.


등 뒤에서 그를 찍은 샷은 엔딩에서 되풀이된다.

흔들리는 것은 희수 때문이 아니다. 그저 그의 마음이 흔들렸던 한 순간의 균열 그 자체다. 그것은 공기의 진동 때문이다. 이질감이 느껴지는 공간과 시간 속으로 transition될 때의 균열, 진동.



more..


다 보고 검은 화면이 떠올랐을 때, 아, 다시 보고 싶다, 중얼거리게 만드는, 목마르게 만드는 영화다.
갈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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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8 03:31 2009/08/08 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