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언니가 호박 덩쿨을 건드리자 나도 모르게 끝을 당겨버렸다. 그러고 나니 작은 호박들이 줄줄 다 끌려나와 버렸다. 그것도 내가 손 쓸 수 없도록, 순식간에.
후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내가 하고 있는 건 생각도 다짐도 아니라 그저 망상일 뿐이다.
지나간 것이 아쉽다면 고치려고 다시 발 벗고 나서든가, 그럴 수 없다면 접어두고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클 때까지 당분간 잊고 지내든가 해야 하는데, 나는 그 둘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 후자 쪽으로 노력해보고 있긴 한데, 잘 안 된다.
이미 일 벌린 것만 세 개.
당장 눈 앞에 있는 발표 준비.
회식에 주말의 약속들. 11월 말의 모임들. - 나는 또 나가서 조잘조잘 이야기하고 떠들고 웃으며 사람들을 만나겠지.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방어 기제가 순식간에 다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다시 잘 추스려 쌓아올리긴 했다. - 이런 걸 보면 좀 컸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여전히 무서운데 또 걸어갈 수 밖에 없다. 이건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인 듯도 싶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버린 게 서글프게 우습다. 그런데 이것 역시 어쩔 수 없었다. 머리로 생각해서 이유를 붙이고 합리화시키는 건 감정에 뒤따라갈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다, 아직도.
그러니까 이제 부질없는 가정법은 그만.
J 말이 맞다.
조금, '매정'한 사람이었으면 싶은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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